구원의 빛 | playlist

에틀링엔의 오래된 분수대를 헐어낼 때마다, 이끼 낀 돌 틈에서는 죽은 새의 깃털이나 녹슨 동전이 나오곤 했다. 나는 그것들을 가려내어 낡은 가죽 가방에 거두어 두는 버릇이 있었다. 돌을 만지는 일은 침묵을 만지는 일과 같아서, 온종일 정과 망치를 두드리고 나면 손바닥에는 서늘한 흙냄새가 배어 있었다. 바이라는 내가 일하는 광장 한편, 돌계단에 앉아 물이 빠져나간 수로의 밑바닥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던 여자였다. 그녀는 늘 헐렁한 양모 코트를 걸쳤고, 깃을 한껏 세워 목덜미의 깊은 흉터를 가리곤 했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그해 마지막 눈이 내리기 전날이었다. 바이라는 자신의 과거를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고, 나 역시 그녀의 침묵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는 언제나 말린 유칼립투스 잎과, 오래된 성당 지하에서나 풍길 법한 그을린 촛농의 냄새가 났다. 마을의 단 하나뿐인 운전사 콜비츠가 한밤중에 내 집 문을 두드린 것은, 그녀가 사라진 지 사흘째 되던 밤이었다. 콜비츠는 화물차 전조등 불빛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다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굳은살로 뒤덮인 그의 손가락 사이로, 독한 담배 연기가 방 안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흩어졌다. 검은 숲의 벼랑길 위에서 노루 한 마리가 빛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고, 그는 주장했다. 부딪히는 소리도, 가죽이 찢기는 비명도 없었다고 했다. 차를 세우고 내려가 보니, 돌길 위에는 한 줌의 흰 재와 타다 만 솔가지 냄새만이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그 기이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바이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라는 밤마다 머리맡에 촛불을 밝혀 두어야만 간신히 잠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빛이 꺼지면 어둠이 제 가슴을 무거운 바위처럼 짓누른다고, 그녀는 자주 속삭였다. 그녀가 사라진 방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책상 위 가문비나무 조각에, 그녀가 새겨 놓은 칼자국만이 깊게 패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콜비츠의 차에 올라, 그가 일러 준 검은 숲의 도로로 향했다. 안개가 전조등의 노란 불빛을 삼켜 버릴 듯 짙게 피어오르는 밤이었다. 차창 너머로 펼쳐진 능선은, 거대한 짐승의 잔등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콜비츠는 운전대를 쥔 채 랭보의 시구 같은 것을 낮게 읊조렸다. 인간은 누구나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이곳으로 흘러든다는 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었다. 그는 내게 바이라의 성이 무엇이냐 물었지만,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그저 바이라라 불렀고, 그녀 또한 나를 렌츠라고만 불렀으니까. 성이란 결국 인간이 짊어진 가장 무거운 족쇄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하곤 했다. 차가 멈춘 곳은 벼랑을 끼고 도는 좁은 굽잇길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가죽 부츠 아래 밟히는 자갈의 감촉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사방은 지독히 고요했고, 오직 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만이 첼로의 저음처럼 낮게 울렸다. 불빛을 비추자, 길가에 박힌 낡은 이정표가 기괴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곳에서 나는 바이라의 양모 코트 깃에 달려 있던 작은 놋쇠 단추를 발견했다. 단추는 차디찬 돌바닥 위에서, 아주 희미하게 온기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것을 주워 손바닥에 꼭 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살갗을 파고드는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잔상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바이라는 동물들이 빛을 향해 몸을 던지는 까닭을 자주 들려주곤 했다. 사람들은 그 생명들이 눈이 멀어 수풀과 도로를 가리지 못한다고 비웃지만,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들은 눈이 먼 것이 아니라, 평생 자신을 짓눌러 온 어둠의 무게를 벗어던질 단 하나의 통로를 찾아낸 것이라고. 칠흑 같은 밤 한가운데 타오르는 전조등의 눈부심은, 그들에게 이 지상에서 허락된 가장 따뜻한 안식처로 보였을 것이라고. 그 빛 속으로 온몸을 내던지는 순간, 그들을 옭아매던 거친 가죽과 뼈의 감옥은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않은 순수한 존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그것은 자멸이 아니라,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구원이자 위로였다. 바이라는 거대한 슬픔을 품은 채 살아가던 여자였다. 그녀의 고향은 전쟁으로 지도에서 지워진, 동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이라 했다. 가족의 이름마저 가슴 깊은 무덤에 묻어 둔 채, 그녀는 평생을 떠도는 유령처럼 살아왔다. 내가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체온이란 너무도 미약해서, 영혼에 뚫린 깊은 구멍을 메우기에는 언제나 턱없이 모자랐다. 나는 이정표 너머 어두운 수풀을 향해 손전등의 불빛을 길게 드리웠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숲의 나무들 사이에서 한 마리의 아름다운 생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노루도 사슴도 아닌, 눈부시게 하얀 빛으로 빚어진 무언가였다. 그 존재가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맑고도 슬픈 그 눈망울을 마주한 순간, 나는 그것이 바이라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더 이상 흉터를 가리려 코트 깃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온몸은 이미 투명한 해방으로 가득 차, 밤하늘의 성좌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보여 준 마지막 미소는, 평생을 버텨 온 고독에서 온전히 놓여난 자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존재는 이내 허공을 향해 가볍게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전조등의 노란 불빛과 겹쳐지는 찰나, 수천 개의 자잘한 빛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빛의 가루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날 때, 지독히 맑고도 서글픈 온기가 번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그것은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침내 가닿은 완전한 자유에 대한 경외였고, 남겨진 자가 느끼는 깊은 안도였다. 콜비츠는 화물차 운전석에 몸을 기댄 채,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냉소로 굳어 있던 그의 눈매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물기가 어려 있었다. "렌츠, 자네도 보았나?" 그가 나직이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검은 숲은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어둠을 짊어진 채, 자신을 구원할 단 하나의 빛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남은 작은 놋쇠 단추가, 밤이 다하도록 그 서늘한 온기를 잃지 않았다. ---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