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마르면 아무도 모른다 | playlist

오르솔랴 하스가 매주 화요일 오후 네 시에 바스의 로만 바스에 온다는 것을 내가 아는 이유는, 내가 그녀를 죽였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쓰고 나서 삼 분 동안 펜을 내려놓았다. 다시 집어 들었다. 아니다. 정정한다. 나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죽었고, 그녀가 죽은 시각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그녀가 죽은 방식이 나와 관련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내 이름은 엘리아스 페레이라. 서른일곱. 바스 시립도서관 수리복원사. 낡은 책을 고치는 사람이다. 찢어진 페이지를 붙이고, 바랜 가죽 표지를 다시 염색하고, 곰팡이가 핀 양피지를 세척한다. 내 손끝에는 항상 풀 냄새가 배어 있다. 메틸셀룰로오스. 책을 접합하는 풀. 이 풀은 마르면 투명해진다.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것. 내 직업이 그렇다. 오르솔랴를 처음 본 것은 도서관 열람실에서였다. 그녀는 매주 화요일 오후 한 시에 와서 세 시까지 책을 읽었다. 항상 같은 자리. 창가 세 번째 좌석. 그 자리에서는 바스 수도원의 첨탑이 보인다. 그녀가 읽는 책은 항상 같았다. '원더러스 오브 인비지블 월드'. 코튼 매더. 1693년 초판본. 마녀재판 기록. 이 책은 특별 열람 신청이 필요하고, 면장갑을 끼고 읽어야 한다. 오르솔랴는 매주 같은 책을 면장갑을 끼고 읽었다. 삼백삼십일 년 된 책을 매주 읽는 여자. 나는 궁금했다. 궁금함이 관찰이 되고, 관찰이 관심이 되고, 관심이 뭔가 다른 것이 되는 데에는 여덟 주가 걸렸다. 아홉 번째 화요일에 나는 말을 걸었다. "같은 책을 매주 읽으시네요." 오르솔랴가 면장갑 낀 손으로 페이지를 누른 채 나를 보았다. 눈이 이상했다. 홍채 색이 양쪽이 달랐다. 왼쪽은 갈색, 오른쪽은 회색. 오드아이. 개에게서는 본 적 있지만 사람에게서는 처음이었다. "같은 책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영어에 헝가리어 억양이 깔려 있었다. "같은 페이지를 읽는 거예요." "어떤 페이지요?" "212쪽이요." 나는 이 책을 알고 있었다. 복원한 적이 있으니까. 212쪽이 뭐였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세일럼의 한 여자가 마녀로 고발당한 기록이었다. 여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왜 그 페이지만요?" "거기에 제 이름이 있으니까요." 나는 웃으려다 멈추었다. 오르솔랴의 표정이 농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농담하는 사람은 눈이 움직인다. 오르솔랴의 눈은 고정되어 있었다. 갈색 눈과 회색 눈이 동시에 나를 향해. "1693년 책이에요." 내가 말했다. "알아요." 그것이 대화의 전부였다. 오르솔랴는 세 시에 책을 반납하고 나갔다. 나는 특별 열람실에 가서 장갑을 끼고 코튼 매더의 책을 열었다. 212쪽. 세일럼 마녀재판 제삼차 심리. 피고인 이름. 우르술라 하세. Ursula Hase. 오르솔랴 하스. Orsolya Has. 발음의 차이. 삼백삼십일 년의 거리. 세일럼의 우르술라와 바스의 오르솔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우르술라 하세의 심리 기록을 다시 읽었다. 피고인 우르술라 하세, 나이 불명. 혐의: 마술을 행사하여 이웃의 소 세 마리를 폐사시킴. 특이사항: 양쪽 눈의 색이 다름. 오드아이. 잠이 오지 않았다. 열 번째 화요일에 오르솔랴가 왔다. 한 시. 창가 세 번째 좌석. 면장갑. 212쪽. 나는 책 수리를 핑계로 옆 테이블에 앉았다. "우르술라 하세는 어떻게 됐어요?" 내가 물었다. "교수형이요." 오르솔랴가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213쪽에 나와요. 하지만 저는 213쪽은 읽지 않아요." "왜요?" "결말을 알면 이야기가 끝나니까요." 이 문장이 나를 오래 잡아두었다. 결말을 알면 이야기가 끝난다. 213쪽을 읽지 않으면 우르술라 하세는 영원히 살아 있다. 재판 중이지만 살아 있다. 교수대에 오르지 않은 채로. 오르솔랴는 매주 화요일 212쪽을 읽으면서 우르술라를 살려두고 있었다. 열한 번째 화요일. 비가 왔다. 바스에 비는 흔한 일이다. 열두 번째 화요일. 흐림. 열세 번째. 맑음. 매주 오르솔랴는 왔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 마디에서 세 마디로 늘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 바스 대학 역사학 연구원. 독신. 이 정도. 열네 번째 화요일, 오르솔랴가 오지 않았다. 기다렸다. 한 시. 두 시. 세 시. 창가 세 번째 좌석은 비어 있었다. 빈 의자에 오후 햇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햇살이 의자 위에서 먼지를 비추고 있었다. 먼지가 떠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설명할 수 없다. 빈 의자와 먼지와 햇살. 그 조합이 부고 같았다. 오르솔랴의 시신은 로만 바스에서 발견되었다. 네 시. 폐장 시간 후. 직원이 순찰하다가 발견했다. 2천 년 된 로마식 욕조의 녹색 물속에 오르솔랴가 떠 있었다. 눈을 뜬 채로. 갈색 눈과 회색 눈이 천장을 향해 열려 있었다. 손에 면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도서관에서 벗지 않고 온 것이다. 아니, 도서관에 오지 않았는데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익사. 외상 없음. 자살 가능성. 사건 종결. 나는 종결에 동의하지 않았다. 면장갑. 오르솔랴가 면장갑을 끼는 것은 책을 만질 때뿐이다. 로만 바스에서 책을 읽을 일은 없다. 그녀가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것은 그녀가 무언가를 만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책이 아닌 무언가를. 혹은 무언가가 그녀를 만지고 있었거나. 부검 보고서를 입수했다. 수리복원사가 부검 보고서를 입수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나는 검시관 사무실에 출입한다. 오래된 의학 서적의 복원 의뢰가 가끔 오니까. 보고서를 읽었다. 모든 것이 평범했다. 익사. 폐에 물. 위장에 미소화 음식물. 한 가지만 제외하면. 혈중 메틸셀룰로오스 검출. 메틸셀룰로오스. 내가 매일 쓰는 풀. 책을 접합하는 풀. 마르면 투명해지는 풀. 이것이 오르솔랴의 혈액에서 검출되었다. 나는 내 작업실로 갔다. 풀 병을 보았다. 뚜껑이 열려 있었다. 내가 열어둔 것인지 아닌지 기억나지 않았다. 풀 병 옆에 코튼 매더의 책이 있었다. 수리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언제? 기록을 확인했다. 열세 번째 화요일. 오르솔랴가 마지막으로 온 날의 전날. 누가 의뢰했는지 확인했다. 의뢰서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르솔랴 하스. 그녀가 이 책의 수리를 의뢰한 것이다. 수리 지시사항란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212쪽과 213쪽을 접합해 주세요.' 두 페이지를 풀로 붙여달라는 의뢰. 붙이면 213쪽은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 우르술라 하세의 교수형 기록은 영원히 읽히지 않는다. 풀이 마르면 투명해져서 접합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두 페이지가 붙어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오르솔랴는 죽기 전에 우르술라를 살리려 한 것이다. 212쪽에서 영원히 멈추게 하려 한 것이다. 나는 풀 병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코튼 매더의 책을 열었다. 212쪽. 그녀의 면장갑 자국이 페이지 위에 남아 있었다. 매주 같은 자리를 눌렀던 손가락의 자국. 면의 결이 양피지에 찍혀 있었다. 삼백삼십일 년 된 종이 위에 열네 주 동안 쌓인 손가락의 압력. 나는 풀 병을 다시 열었다. 212쪽의 가장자리에 풀을 발랐다. 213쪽과 맞붙였다. 손으로 눌러 접합했다. 풀이 마르기 시작했다.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삼 분이면 마른다. 마르면 아무도 모른다. 우르술라 하세는 이제 영원히 212쪽에 있다. 재판 중이지만 살아 있다. 오르솔랴의 혈액에서 검출된 메틸셀룰로오스가 내 풀에서 온 것인지는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수리하면서 풀을 사용했고, 그 풀이 묻은 페이지를 오르솔랴가 매주 맨손으로—아니, 면장갑으로—만졌고, 그 미량이 피부를 통해 혈류에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있는가. 독성학적으로. 의학적으로. 가능한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이 풀을 만진다. 내 손끝에 배어 있다. 내가 만지는 모든 것에 이 풀이 묻는다. 내가 수리한 모든 책에. 그 책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마르면 투명해진다.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것. 이 수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자백인지 고백인지 유서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오르솔랴가 213쪽을 읽지 않은 이유를 나는 이제 안다. 결말을 알면 이야기가 끝나니까. 이 수기도 결말을 쓰지 않겠다. 풀이 다 말랐다. 투명하다. 아무 흔적도 없다. - All writing and music in this playlist are 추리플리 origin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