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바다가 되어 | playlist
북쪽 산등성이에 그것이 처음 내려앉던 해, 사람들은 거대한 유백색 구름이 지상으로 추락한 줄로만 알았다. 빛을 남김없이 삼키면서도 스스로 눈부신 그 불투명한 덩어리는, 어떤 미동도 없이,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바위처럼 묵직하게 지면을 누르고 있었다. 관청의 검은 차량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산길을 분주히 오르내렸고, 저명하다는 학자들이 저마다 렌즈를 들이대며 재난의 징후를 읽어내려 애썼지만, 그것이 한 일이라고는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무해하고도 절망적인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저 우는 것. 소리 없는 울음이 그 거대한 유백색 표면에서 투명하게 배어 나오기 시작하던 때, 나는 낡은 목제 베틀 앞에 앉아 무명천을 짜고 있었다. 나무 북이 좌우로 오가며 실과 실이 맞물리는 일정한 마찰음 사이로, 낮고 깊은, 어떤 거대한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진동이 작업실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것이 흘리는 눈물은 지독하리만치 맑았고, 지상의 어떤 액체보다도 순수했다. 바다의 비린내도, 소금의 짠맛도 없었다. 다만 깊은 숲에서 갓 꺾은 전나무 잎의 서늘한 풋내와, 수십 년간 볕이 들지 않은 서가에 잊힌 종이 뭉치의 고요한 냄새가 기묘하게 섞여 있을 뿐이었다. 그 맑은 액체는 단단한 지면의 가장 낮은 틈과 굴곡진 보도블록 사이부터, 천천히,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집요함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살던 탁이 나를 떠난 것은, 이 기묘하고 고요한 침수가 시작되기 꼭 반년 전의 일이었다. 탁은 본래 말수가 극도로 적었고, 이따금 자신의 존재가 주위의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일을 깊이 미안해하는 사람처럼 유난히 발꿈치를 들고 걸었다. 그가 낡은 가방 하나만 들고 문을 나선 뒤 마당 구석에 남은 것은, 푸른 이끼가 두껍게 낀 작은 옹기 화분 셋과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무쇠 가위 한 자루가 전부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슬픔을 빚졌어.” 탁이 마지막으로 남긴 그 문장은, 여전히 내 방 서늘한 문턱 위에 문신처럼 새겨져 아무리 마른걸레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물이 불어 마당의 옹기들을 차례로 삼키고 마침내 그 완강한 문턱마저 넘어설 때까지도, 나는 탁이 남긴 그 문장을 차마 밟지 못해 늘 그 위를 건너뛰어 걸어야 했다. 길바닥이 지워지자 사람들은 처음엔 바짓단을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걸었고, 다음엔 붉은 고무보트를 띄웠으며, 물이 이층 높이를 넘어서자 저마다 지붕 위로 올라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는 결코 위협적이지도 사납지도 않았으나, 단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완벽한 수평을 이루며 차올랐다. 도시를 덮은 외계의 눈물은, 인간이 그어놓은 허울뿐인 경계들을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지워가고 있었다. 어느 해질녘, 이웃에 살던 견이 뗏목처럼 개조한 커다란 장롱 문짝을 저어 내가 머무는 지붕으로 찾아왔다. 견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른 식물 줄기 몇 다발과 두꺼운 가죽 표지의 낡은 책 몇 권을 무릎 위에 쌓아두고 있었다. “이 물은 아무리 마셔도 몸에 해롭지 않다더군요, 오히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면 신기하리만치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견이 노 대신 쓰던 길쭉한 나무판자를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지붕 용마루의 가장 높은 자리에 걸터앉아 발밑에 펼쳐진 풍경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날마다 가로지르던 교차로와, 단골들이 모여 앉던 오래된 식탁들과, 누군가의 빛바랜 성씨가 적힌 철제 간판들이 모두 투명하고 짙푸른 물빛 아래 고요히 잠겨 있었다. 마치 거대한 얼음 보석함 속에 지나간 나날들을 정교하게 박제해 둔 듯한, 압도적인 정적이었다. “저 위의 생명체는 어째서 저토록 멈추지 않고 우는 걸까요?” 내가 묻자 견은 턱을 괸 채 냉소적이면서도 어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살던 행성을 통째로 잃고 홀로 떠돌던 중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니면 이 외롭고 딱딱한 행성에 닿자마자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한 사랑에 빠져버렸거나.” 견의 목소리에는 절망의 기색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마땅히 와야 할 아름다운 종말을 목도한 예언자의 초연함이 배어 있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오랜 세월 서로에게 슬픔을 숨기느라 너무 많은 것을 써버렸잖아요, 차라리 이렇게 다 함께 물에 잠겨버리는 편이 서로에게 덜 미안할지도 모르죠.” 물이 이층 창문을 온전히 채우고 지붕 처마 밑까지 차오르자, 꿈과 생시의 경계는 밤공기에 스미는 물안개처럼 흐릿해졌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면 물속 깊은 곳에서 탁이 날 선 가위로 무명천을 싹둑싹둑 자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번쩍 눈을 뜨면 발가락 사이를 흐르는 서늘한 물의 감촉만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물 아래로 손을 깊이 뻗어, 가라앉은 가구들의 모서리와 손잡이를 손끝으로 가만히 더듬었다. 상실이란 본래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무게를 가늠할 길이 없어 끝내 사람을 미치게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외계의 눈물 속에서는, 신기하게도 모든 단단한 것들이 저마다의 무게를 잃고 가볍게 떠올랐다. 탁이 남기고 간 그 무겁고 검은 무쇠 가위마저, 물속에서는 한 송이 가녀린 수선화처럼 내 손바닥 위에서 하늘거리며 떠다녔다. 슬픔이 마침내 온 세상을 부피로 채우기 시작하자, 역설적이게도 오랜 세월 내 가슴 깊은 곳에 웅크려 있던 지독한 응어리가 천천히 풀려 물속으로 녹아들었다. 온 지구가 이토록 거대하게 함께 울어주고 있으니, 내가 지닌 지극히 사사롭고 작은 울음 따위는 이제 아무런 흉터도 결함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만들어낸 백색의 대해는 파도 한 점 없이 잔잔했고, 어떤 비명도 고통의 흔적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우주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침묵만이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을 뿐이었다. 먼 수평선 너머, 북쪽 능선에 걸린 유백색의 거대한 존재가 이제는 아주 작고 아스라한 점으로만 보였다. 그것은 여전히 한결같은 주기로 투명한 눈물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지상에 남은 마지막 봉우리들마저 그 거룩한 물밑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지붕과 지붕을 잇대어 만든 거대한 나무 뗏목 위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오랜 적의를 내려놓고 서로의 안부를 다정히 물었다. 살아생전 다시 못 볼 줄 알았던 옛 연인들이 물 위에서 우연히 노를 부딪치고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예정된 세계의 소멸 앞에서 오히려 서두름 없이 단정하게 미소 지었다. 견이 건네준, 풀 향이 도는 따뜻한 차를 입에 머금으며, 나는 이 서서히 잠겨가는 파멸의 세계가 건네는 모순된 위로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면 저마다의 안에 꽁꽁 얼려두었던 해묵은 비탄을, 저 아름다운 외계의 존재에게 대신 울어달라 떠맡기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온 세상이 물로 가득 차 하나의 완벽한 구체가 되는 날, 나와 탁 사이를 갈라놓았던 아득한 거리도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고요히 평평해질 것이다. 수면 위로 소리 없이 내려앉는 물방울들이 둥근 파문을 그리며 영원 속으로 번져 갔다. 나는 서서히 차오르는 그 투명한 위로 속으로, 지상의 마지막 디딤돌이던 기와 한 장을 놓아버리고 두 발을 온전히 담갔다. 그 물의 촉감은 기분 좋을 만큼 아스라하고 서늘했으며,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련되어 있던 거대한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고 단단했다.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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