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삼킨 방 | playlist
히즈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바다가 유난히 푸르던 어느 목요일이었다고 했다. 그가 쓰던 이층 방을 정리해 달라는 편지를 받고, 나는 이 낡은 목조 건물의 계단을 올랐다. 방은 기이할 만큼 단출했다. 눈이 머물 곳이라고는 하얗게 바랜 매트리스와 낡은 서랍장뿐이었다. 짙은 올리브색으로 칠해진 벽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유화 물감의 비린 기름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가장 낯선 것은, 한쪽 벽 전체를 대신하고 있는 커다란 개구부였다. 건축가가 그 자리에 벽 세우는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방의 한 면이 허공을 향해 송두리째 열려 있었다. 본래 그 자리에는 세토 내해의 윤슬과 고깃배들이 일렁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거기 있는 것은 평평하고 누런 흙벽 하나뿐이었다. 질감도 명암도 없는, 한 장의 수직면. 고개를 끝까지 젖혀도 벽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바다을 통째로 삼킨 그 진흙의 벽이, 건물 바로 앞 두 걸음 거리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세상의 바깥쪽이 거기서 뚝 끊겨 있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 속에 잠시 머물다 빠져나갈 때, 문득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그리던 신이 하필 이 대목에서 깜빡 졸았던 모양이라고. 미처 다 그리지 못한 설계도의 여백을, 거기 그냥 누런 흙으로 발라 덮어 버린 것이라고. 아래층에 사는 노파는 아침마다 내게, 바다 건너 섬들이 참 곱지 않으냐고 물었다. 마른 손으로 문틀을 짚은 채였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모양이었다. 착각하는 것이 나인지, 아니면 세상 전체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흐릿한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연기는 위로 오르지 않았다. 수평으로, 곧게, 화살처럼 벽을 향해 뻗어 나가더니 흙빛 표면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돌처럼 단단해 보이던 진흙이 연기를 빨아들이는 순간, 방 안에 젖은 모래와 오래된 삼나무 냄새가 번졌다. 사라진 히즈루의 살갗에서 나던, 바로 그 냄새였다. 그는 늘 세상의 뒷면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보는 표면이란 얇은 도화지 한 장에 지나지 않아서, 손끝으로 가만히 누르기만 해도 그 너머의 깊은 침묵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나는 그것을, 글을 쓰다 만 사람이 늘어놓는 그럴듯한 문장쯤으로 여겼다. 다음 날이면 스스로 지워 버릴, 그런 문장. 서랍장 위에는 잉크가 절반쯤 남은 만년필과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종이에는 글자 대신, 가느다란 칼자국 하나가 세로로 길게 그어져 있었다. 벽의 그것과 똑같은 방향이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 홈을 더듬어 보았다. 살갗이 베일 듯 서늘한 감각이 손가락 끝을 타고 올라왔다. 바람 한 점 없는 방이었는데도, 귀를 기울이면 흙벽 너머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멀고, 아주 가느다란 소리. 그러나 그것은 물의 소리가 아니었다. 수만 개의 모래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메마른 마찰음. 나는 매트리스 모서리에 걸터앉아 오래도록 그 소리를 들었다. 세상이 이토록 고요하게 가라앉으면, 사람의 안은 도리어 소란해진다. 나는 매트리스에 앉은 채 오래 생각했다. 히즈루는 이 황량한 누런 벽을 마주하고서 대체 무엇을 완성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수수께끼를 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 한 편의 수수께끼가 되기를 즐기던 사람이었다. 나는 일어나 방의 가장자리로, 허공과 맞닿은 그 경계까지 걸어갔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발 디딜 데 없는 아래로 곤두박질칠 터였다. 그런데도 눈앞의 벽은 거짓말처럼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그대로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그 표면에 손바닥을 댔다. 차가운 거진 흙을 예상했지만, 손에 닿은 것은 부드럽고 따뜻한, 벨벳 같은 감촉이었다. 이윽고 내 손가락 마디가, 아주 천천히, 그 안으로 잠겨 들기 시작했다.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물을 가득 받은 욕조에 손을 담그듯,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벽은 내 손을 밀어내기는커녕, 더 깊은 안쪽으로 가만히 끌어당겼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히즈루는 달아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만, 이 거대한 여백의 일부가 되기를 택한 것뿐이었다. 벽 안으로 사라진 손끝에서부터 온기가 번져 왔다. 그 안에는 슬픔도, 조급함도 없는 완전한 고요가 있었다. 나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끝으로 비벼 껐다. 불씨가 사그라들자, 방은 다시 짙은 그늘 속으로 가라앉았다. 벽 너머, 모래의 파도 소리가 한결 또렷해져 있었다. 이제는 정해야 했다. 비린 기름 냄새가 밴 이 좁은 초록 방에 홀로 남아, 보이지 않는 바다를 그리워하며 늙어 갈 것인가. 아니면 저 따뜻하고 너른 누런 여백 속으로 이 몸을 통째로 내던질 것인가. 나는 신발을 벗어, 하얀 매트리스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사람처럼, 누런 벽을 향해 마지막 한 걸음을 옮겼다. 몸이 천천히 그 안으로 스며들 때, 두 눈을 가득 채운 것은 어떤 빛보다도 눈부신 흰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의 한가운데, 슬픔도 조급함도 없던 그 고요의 한가운데에 그가 있었다. ---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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