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수원지, 물빛을 걷는 사람들 (2)

** TTS를 활용한 목소리입니다. ** 일상을 기반으로 한 소설입니다. 회동수원지, 물빛을 걷는 사람들 제3장: 상현마을의 성찬, 배낭을 열다 선동 상현마을에 들어서자 눈앞이 탁 트이며 넓은 호숫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은근히 달아오른 Vermillion빛 열기 속에서 15명의 크루는 자연스럽게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을 찾아 움직였다. "여기가 명당이네! 이쪽으로 오세요!"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 널찍한 그늘 명당으로 모여들었다. 불어오는 호숫바람이 나뭇잎을 사그락사그락 흔들며 우리의 땀을 기분 좋게 식혀주었다. 약 9km 가까이를 쉼 없이 걸어온 터라 등 뒤의 배낭이 꽤 묵직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툭, 툭, 소리를 내며 거대한 배낭들이 바닥에 내려놓아 졌고, 이내 커다란 돗자리가 잔디밭 위로 넓게 펼쳐졌다. "자, 다들 보물 보따리 한번 풀어보세요!" 리더의 신호탄과 함께,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15명의 배낭은 마치 마법의 주머니라도 된 듯 끝도 없이 음식을 뱉어냈다. "우와, 이게 다 뭐야?"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연신 터져 나왔다. 돗자리 위는 순식간에 화려한 뷔페식당으로 변신했다. 정성스레 말아 온 갖가지 종류의 김밥들이 줄을 지었고, 갓 쪄내어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속이 꽉 찬 왕만두가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아삭아삭한 오이와 싱그러운 토마토, 새콤달콤한 키위와 참외가 먹기 좋은 크기로 예쁘게 손질되어 락앤락 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압권은 평소에 보기 힘든 노란 속살의 망고수박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삶은 달걀이었다.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는 그야말로 완벽한 한 상 차림이었다. 등산 배낭의 좁은 공간 안에 이 무겁고 부피 큰 과일과 만두를 뭉개지지 않게 고이 모셔왔을 멤버들의 다정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거 무거워서 어떻게 들고 왔어? 진짜 대단하다!" "불닭맨 형님, 한 젓가락 하이소! 이거 드시려고 아까 오리불고기 참으신 거 아닙니까!" 누군가 젓가락을 쥐여주기가 무섭게 15명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땀 흘린 뒤에 먹는 음식은 그 어떤 산해진미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아삭한 오이를 베어 물자 청량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고, 달콤한 망고수박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갈증을 씻어내 주었다. 속이 꽉 찬 왕만두와 김밥을 번갈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는 동안, 돗자리 주변은 행복한 대화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 성찬의 화룡점정은 역시나 얼음물 틈에서 어렵사리 차갑게 유지되어 온 막걸리였다. 콸콸콸, 뽀얀 막걸리가 잔에 채워질 때마다 청량한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15명의 잔이 공중에서 한데 모여 가벼운 챙 소리를 냈다. "오늘의 안전한 완주와 우리 팀을 위하여, 건배!"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들이켠 막걸리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시원하고 톡 쏘는 탄산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며 몸속 깊은 곳에 남아있던 열기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크으, 하는 깊은 감탄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듯한 짜릿한 쾌감이었다. "진짜 이 맛에 걷는다, 이 맛에 살아!" 내가 잔을 내려놓으며 크게 웃자, 모두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맛있는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자연스럽게 가벼운 티타임이 이어졌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차와 텀블러 안의 아메리카노가 돌았다. 달궈졌던 몸이 완전히 식어가며 찾아오는 나른함과 평온함은 트레킹이 주는 가장 큰 사치 중 하나였다. 눈앞에는 회동수원지의 푸른 물결이 조용히 출렁이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초록색 나뭇잎 사이로 부서진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늘 속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수원지는 참으로 다정하고 아늑했다. "진짜 좋네요, 여기." 막내 회원이 차를 마시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렇지? 내가 이 맛에 회동수원지를 종종 찾는다니까. 걸어도 좋고, 뛰어도 좋고, 이렇게 가만히 앉아 쉬어도 참 좋은 곳이야. 나 불닭맨이 괜히 단골이 아니라니까?" 내가 호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45년 동안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던 비밀의 정원은, 오늘 우리 15명에게 가장 완벽한 쉼터를 내어주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다시 한번 우리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충전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달콤한 휴식이 끝나면, 남은 절반의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맛있는 갈비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오늘 이 완벽한 하루를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했다. 제4장: 다시 길 위에서, 18km의 중간점을 넘어 "자, 서서히 일어날 준비 해볼까요? 맛있는 것 먹었으니 힘내서 가야죠!" 여동생의 활기찬 목소리가 평온하게 가라앉아 있던 그늘 아래를 깨웠다. 몸에 닿는 바람이 워낙 시원하다 보니 엉덩이를 떼기가 못내 아쉬웠지만, 15명의 크루는 이내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먹고 남은 쓰레기는 단 하나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봉투에 꼭꼭 눌러 담아 배낭 깊숙이 집어넣었다. 배낭은 아까보다 가벼워졌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정성 가득한 음식과 다정한 대화로 든든하게 채워져 있었다. 다시 등산화 끈을 팽팽하게 조여 매고 숲길로 발을 내디뎠다. 선동 상현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수원지의 또 다른 매력이 펼쳐졌다. 아까 지나온 길이 잘 정돈된 공원 같은 아늑함이었다면, 이제부터 마주할 길은 보다 깊고 고즈넉한 대자연의 품에 가까웠다. 이제 막 전체 코스의 절반인 9km를 넘어서는 시점. 다리에 슬슬 묵직한 피로감이 쌓일 법도 한데, 15명 중 누구 하나 뒤처지거나 처지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상현마을에서 마신 막걸리 한 잔이 기분 좋은 부스터 역할을 해준 모양이었다. "불닭맨 오빠, 다리 안 아프세요? 아까 오리불고기 못 드셔서 기운 빠진 거 아니에요?" 여동생이 대열 선두에서 뒤를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무슨 소리! 아까 먹은 망고수박이랑 왕만두 덕분에 지금 힘이 넘친다. 이 기세면 20킬로가 아니라 30킬로도 그냥 시원하게 쭉쭉 치고 나가겠는데? 내 사전에 방전이란 없다!" 내가 호기롭게 대답하자 주변에서 "오~ 역시 에이스 불닭맨!"이라며 환호성이 터졌다. 길은 곧게 뻗은 대나무 숲길로 이어졌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우거진 대나무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스스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서로의 몸을 부딪쳤다. 그 청량한 소리가 마치 우리 15명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박수소리처럼 들렸다. 대나무 사이로 비쳐 드는 연둣빛 햇살이 길 위에 아름다운 모자이크 패턴을 그려내고 있었다. "여기 진짜 예술이다.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네." 누군가 나지막이 감탄을 뱉었다. 혼자 걸었다면 사색에 잠겼을 이 길을, 15명이 함께 걸으니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발걸음 속도가 빠른 이들은 앞에서 대열을 이끌고, 체력이 조금 부치는 이들은 뒤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시시콜콜한 농담부터 삶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대나무 숲길 사이로 잔잔하게 흘러 다녔다. 호숫가는 어느새 오후의 깊은 햇살을 받아 아까와는 또 다른 빛깔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침의 물빛이 싱그러운 청록색이었다면, 지금의 물빛은 깊고 단단한 네이비블루에 가까웠다. 잔잔한 수면 위로 빛나는 윤슬을 바라보며 걷는 동안,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우고 있던 일상의 스트레스와 고민들이 호수의 깊은 물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 맛에 회동수원지를 찾고, 이 맛에 이 긴 길을 걷는 것이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이제 저 멀리 출렁다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선두를 지키던 베테랑 멤버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호수 저편으로 향했다. . . . 제5장: 호수 위의 스릴, 출렁다리를 건너다 . . . 제6장: 마지막 2km, 폭발한 질주 본능 . . . 제7장: 에필로그 - 다시, 물빛을 기억하며 . . . [작가의 말]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를 넘어, 그 길 위에 함께한 이들과 마음의 결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4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람의 발길을 거부했던 회동수원지의 푸른 물빛은, 오늘 우리 15명의 크루에게 도심 속 가장 완벽한 쉼터이자 뜨거운 레이스의 무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처음의 소박했던 약속이 운동과 패션, 그리고 사람을 끄는 다정한 매력을 가진 리더 여동생을 중심으로 커다란 무리가 되기까지, 우리를 움직인 것은 결국 ‘함께하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안락동 충렬사역에서 시작되어 99번 버스의 덜컹거림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18km의 거대한 원은 매 순간이 유쾌한 반전과 따뜻한 연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리불고기와 향어회의 짙은 유혹을 묵묵히 견뎌내고, 선동 상현마을의 시원한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배낭을 열어 나누었던 소박하고도 위대한 성찬은 아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돗자리 위에 펼쳐진 김밥과 노란 망고수박, 차가운 막걸리 한 잔은 땀 흘린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사치였습니다. 특히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마지막 2km 구간이었습니다. 모든 체력이 방전되어 그저 걷기만 해도 숨이 차오를 무렵, 단단한 아스팔트 지면을 박차고 나간 남동생과 큰형님의 돌발적인 질주는 우리 안의 순수한 활력을 깨우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절대 뛰지 않겠다던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안의 ‘불닭맨’ 본능을 깨워 지면을 박차고 나갔던 그 순간의 도파민과 해방감은 이 소설의 가장 화끈한 피날레였습니다. 그렇게 온몸의 에너지를 100% 불태운 뒤 마주한 숯불 향 가득한 돼지갈비의 맛은 그야말로 완벽한 보상이었습니다. 18km의 길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일상에 묻어있던 묵은 먼지들을 호수의 깊은 물 속으로 털어냈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득했을 그 길을 낙오자 없이, 부상자 없이 전원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조금 팍팍해지거나 도시의 소음에 숨이 막힐 때면, 우리는 언제든 회동수원지의 서늘한 호숫바람과 마지막 2km를 뒤흔들던 에이스들의 힘찬 발소리를 기억해 낼 것입니다. 참 좋은 날, 최고의 크루들과 함께 발을 맞출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다음 계절, 더 화끈하고 유쾌하게 이어질 우리들의 다음 길을 기약합니다.

회동수원지, 물빛을 걷는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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