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수원지, 물빛을 걷는 사람들 (1)

** TTS를 활용한 목소리입니다. ** 일상을 기반으로 한 소설입니다. 회동수원지, 물빛을 걷는 사람들 제1장: 충렬사역 4번 출구, 15개의 발걸음 토요일 오전의 지하철 4호선 충렬사역은 평일의 출퇴근길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매끄러운 타일 바닥 위로 탁탁, 기분 좋은 등산화 굽 소리가 낮게 울렸다. 내가 개찰구를 나와 4번 출구 쪽 넓은 대합실로 향했을 때, 저 멀리서 이미 하나의 거대한 온기 덩어리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도 단번에 눈에 띄는 실루엣이 있었다. 이번 트레킹의 호스트이자, 우리 크루의 리더인 여동생이었다. 늘 그렇듯 여동생의 패션은 감탄을 자아냈다. 기능성 아웃도어 의류를 이토록 세련되게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핏이 딱 떨어지는 카키색 트레킹 팬츠에 화사한 라임색 윈드브레이커, 그리고 가볍게 얹어 쓴 러닝 캡까지. 그녀의 존재 자체가 오늘 우리가 걸을 18km의 여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이정표 같았다. "어! 불닭맨 오빠 오셨어요?" 여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반겼다. 한 명, 두 명, 세 명…… 마음속으로 가만히 숫자를 헤아려보았다. 처음 몇 명이서 단출하게 호숫가나 한 바퀴 돌자고 시작했던 작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 여동생이 리드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톡방의 알림음이 불이 나기 시작했다. 워낙 운동을 프로처럼 잘하는 데다,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그녀의 매력 덕분인지 자기도 가겠다며 손을 든 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안락동 충렬사역 대합실에 모인 인원만 벌써 십수 명이었다. "진짜 대가족이 됐네. 너 인기가 거의 교주 수준인데?" 내 농담에 주변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여념이 없었다. "불닭맨 형님, 오늘 페이스 기대하겠습니다!" "그 배낭 새로 산 거야? 예쁘다." 시시콜콜하지만 다정한 대화들이 대합실의 차가운 공기를 금세 달구었다. 주말 아침의 게으름을 이겨내고 오직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특유의 건강한 활력이 가득했다. 우리는 무리를 지어 지상으로 올라왔다. 5월의 햇살은 이미 아침부터 제법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고 지상을 내리쬐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타야 할 버스는 99번. 안락동을 지나 회동동 종점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관문이었다. "버스가 곧 들어옵니다! 다들 카드가 지갑에 있는지 확인하시고요!" 여동생의 명랑한 목소리가 대열을 정돈했다. 10여 명이 넘는 무리가 한 번에 버스에 타면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 주말 오전의 99번 버스 안은 한산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된 전세 버스처럼 여유로운 공간이 우리를 맞이했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출발하자, 창밖으로 익숙한 부산의 도심 풍경이 흐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은 멤버들은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오늘 코스가 18킬로라면서요? 저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겠죠?" 처음 참가한 막내 회원이 약간 긴장한 듯 내게 물었다. "걱정 마요. 회동수원지는 길이 워낙 평탄하고 예뻐서 걷다 보면 18킬로가 아니라 20킬로, 30킬로도 그냥 시원하게 쭉쭉 걷게 될 테니까." 내가 장담하듯 말하자 옆에 앉은 선배 회원이 웃으며 말을 보탰다. "맞아, 그리고 우리 모임의 진짜 목적은 걷는 게 아니라 걷고 나서 먹는 거잖아. 맛있게 먹기 위해 내 몸에 죄책감을 지우는 과정이지! 특히 우리 불닭맨 형님은 먹기 위해 뛰는 분이잖아!" 그 말에 버스 뒷좌석에 앉은 이들까지 크크크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실제로 그랬다. 불닭맨이라는 내 닉네임처럼 화끈하게 운동하고 화끈하게 먹는 나에게 회동수원지가 최고의 코스인 이유는 단연코 '음식'과 '운동'의 완벽한 밸런스에 있었다. 머릿속으로 벌써부터 수원지 주변의 맛집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국물이 끝내주는 칼칼한 어탕수제비,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매콤한 오리불고기, 푹 고아내어 살점이 야들야들한 오리백숙, 그리고 미나리와 함께 버무려 낸 싱싱한 향어회까지……. 회동수원지는 미식가이자 운동 마니아인 나에게는 그야말로 천국과 다름없는 성지였다. "근데 오늘 메뉴는 오리 아니에요. 리더가 오늘 다 패스(pass)라던데요?" 막내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내 상상 속 오리불고기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어? 진짜? 오리를 안 먹는다고?" 내가 깜짝 놀라 앞좌석의 여동생을 바라보자,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불닭맨 오빠, 오늘은 수원지 안에서는 무조건 걷기만 할 거예요! 대신 끝내주게 맛있는 돼지갈비 예약해 놨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돼지갈비라는 말에 가슴속에 차올랐던 아쉬움이 싹 가시고, 새로운 기대감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래, 달콤하고 짭조름한 돼지갈비에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라면 18km를 피처럼 흘리며 걸을 가치가 충분했다. 버스는 어느새 도심의 높은 빌딩 숲을 벗어나 점차 푸른 빛이 짙어지는 외곽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에서 미세하게 흙 내음과 풀 내음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회동동 종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치익-, 소리를 내며 버스 문이 열렸고, 우리는 차례로 회동동 종점의 아스팔트 위로 발을 디뎠다. 버스 정류장 앞 널찍한 공터에는 이미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마지막 멤버들이 서 있었다. "어이! 불닭맨! 이쪽이야!" 그들이 손을 흔들었다. 충렬사역에서 출발한 인원에 현장 합류 멤버들까지 합쳐지니, 마침내 최종 완전체 15명이 완성되었다. 누구 하나 늦거나 빠진 사람 없는 완벽한 시작이었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았고, 하늘은 마치 잉크를 풀어놓은 듯 푸르렀으며, 함께 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활력으로 빛났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그야말로 최고의 '트레킹 데이(Trekking Day)'였다. 여동생이 모두를 모아놓고 가볍게 박수를 쳤다. "자, 다들 모이셨죠? 오늘 날씨가 좀 더우니까 오버페이스 하지 마시고요. 서로 발맞춰서 즐겁게 가보겠습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회동수원지로, 출발!" "와아아!" 짧은 함성과 함께 15쌍의 등산화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스팔트 길을 지나 수원지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등 뒤로 쏟아지는 강렬한 햇살에 목덜미에서부터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은근히 후끈한 열기가 몸을 감싸 안았지만, 누구의 얼굴에도 짜증은 없었다. 저 앞에 펼쳐진 초록빛의 거대한 숲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활짝 열린 숲길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서늘하고 청량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호수를 거쳐 온 바람이 나무 사이를 통과하며 완벽한 천연 에어컨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아, 시원하다!" 누군가의 탄성과 함께, 우리 15명의 본격적인 18km 대장정이 힘차게 막을 올렸다. 제2장: 부드러운 이견, 그리고 유혹의 거리 숲의 초입이 선사한 청량한 바람은 15명의 발걸음에 가벼운 리듬을 불어넣었다. 오른쪽으로는 햇살을 받아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회동수원지의 푸른 물결이 넘실댔고, 왼쪽으로는 짙은 녹음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길이었다. 단란하게 모여 앉았던 99번 버스 안에서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길 위로 이어졌다. 앞사람의 배낭을 보며 걷고, 옆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는 동안 운동화 굽이 흙길을 스치는 소리가 사각사각 청량하게 울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 . . [작가의 말]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은 언제나 거짓 없이 몸과 마음에 새겨집니다. 바쁜 일상과 주말의 달콤한 휴식을 잠시 접어두고, 오직 '함께 걷겠다'는 하나의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했던 작은 약속이, 서로의 온기가 더해지며 어느덧 커다란 여정으로 부풀어 오르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입니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긴 길이었지만, 앞에서 이끌어주는 든든한 리더와 묵묵히 발을 맞춰주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대열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늘 달콤한 유혹과 마주하게 됩니다. 편안하게 주저앉아 눈앞의 즐거움을 탐닉하고 싶은 순간, 혹은 지친 다리를 핑계 삼아 멈춰 서고 싶은 순간들이 불쑥 찾아오곤 합니다. 하지만 그 고단한 시련 속에서도 서로에게 웃음 섞인 응원을 건네며 묵묵히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우리 사이에 흐르는 유쾌한 연대감 덕분이었습니다. 당장의 만족을 잠시 미뤄둔 자리에는 자연이 선사하는 청량한 바람과 초록빛 풍경이, 그리고 무엇보다 값진 '함께하는 이들의 미소'가 더 큰 선물로 채워졌습니다. 단순히 거리를 채우는 것을 넘어, 서로의 걸음에 호흡을 맞추며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충전해 나가는 시간. 비록 이 달콤한 휴식이 끝나면 또다시 땀 흘려야 할 남은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완성해 줄 더 큰 기쁨과 행복한 성찬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언제나 길 위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우리 크루 멤버들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전합니다. 거친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기분 좋게 신발 끈을 조여 매는 우리의 모든 발걸음이 누군가에게도 청량한 바람 같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 은근히 달아오른 열기 속에서 9km 가까이를 걸어온 15명의 크루들. 상현마을에 들어서자 눈앞이 탁 트이며 회동수원지의 아늑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시원한 호숫바람이 머무는 버드나무 그늘 아래, 마침내 넓은 돗자리가 펼쳐집니다. 멤버들이 뭉개지지 않게 고이 모셔온 배낭 속 음식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정성 가득한 김밥과 온기가 남아있는 왕만두, 윤기가 흐르는 삶은 달걀과 노란 속살의 망고수박까지. 잔을 부딪치며 들이켠 시원한 막걸리는 몸속 깊은 열기를 단숨에 날려버리고, 이어지는 따뜻한 티타임은 트레킹이 주는 가장 큰 사치이자 평온을 선물합니다.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충전한 비밀의 정원에서의 시간. 그러나 이 달콤한 휴식이 끝나면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완성할 남은 절반의 여정이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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