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핵심은 '마음 비우기'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마음 #불교 #종교 #깨달음 종교라고 하면 신앙을 빼놓고는 논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이 없는 종교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지요.   그렇다면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신앙을 정의하자면 ‘우러러 믿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믿는다는 걸까요?   神이 창조주인 것을 믿고, 그 神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을 믿습니다.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나에게 여러 가지 복을 내려 준다는 사실만은 반드시 믿어야 하지요. 그래서 종교의 신앙이란 결국 ‘나를 잘 되게 해 줄 것을 믿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 神이 구세주인 것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구세주인 것이 증명된다고 해도 그 神이 무슨 이유로 ‘나’를 구원해 준다는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관계도 따라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이치적으로 따지게 되면 믿음의 근거에 대해 터럭만큼의 이해도 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믿음에는 이성적 사유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믿어야만 종교의 믿음이 성립하는 것이지요.   지구상의 모든 종교는 그래서 맹신이 됩니다. 맹신이 되는 순간 인간의 이성은 마비되고 영력이 급속도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죽으면 기대했던 천국이나 극락은 고사하고 귀신과 같은 퇴락귀만 면해도 다행인 것이지요.   그런데 유독 불교만은 예외입니다. 불교는 신앙이 아닌 깨달아 붓다가 되는 반야의 종교이니까요. 부처님을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똑같은 의식의 경지에 이르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것은 구조적으로 불교에 개입될 수 없습니다. 신앙이 껴드는 순간 그건 불교가 아니라 힌두교 혹은 기독교처럼 돼버리고 맙니다.   그럼에도 왜 불제자들은 신앙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는 걸까요?   그건 붓다가 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아 붓다가 될 수 없으니까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부처님께 잘 보여서 극락왕생하려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 천국가려는 심리와 같은 것이지요.   이런 심각한 병폐를 막기 위해 세존이 던진 화두가 바로 無我입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말은 마음의 실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나’라고 할 것이 있겠지요. 그런데 마음이란 것은 어떤 조건에 의해 잠시 잠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환영이고, 그래서 ‘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불교의 지론입니다. 오늘날 현대 뇌과학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바와 일치합니다. 사실 현재까지 드러난 과학적 실험만 봐도 뇌를 건드려서 마음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성향과 집착하는 심리를 넣고 뺄 수 있기에, 성인(聖人)이나 해탈한 초인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 집니다. 향후 몇 십 년만 더 발달하면 마음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 더욱 명백하게 굳어질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실체가 없으면 無我가 되고 세존의 말씀은 여실히 증명됩니다.   그런데 마음의 실체가 없는데 왜 마음을 비우려고 혈안이 되는 걸까요? 그런 것 자체가 無我에 위배되는 데도 말입니다.   수행자들이 마음을 비우는 이유는 자기 존재를 최고로 만들려는 我相의 몸부림 때문입니다. 이들은 마음이란 그릇에 탐진치가 잔뜩 들어 있는 것으로 상상합니다. 그래서 탐진치를 없애는 것이 마음을 비워 존재 가치가 한껏 올라가는 행위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탐진치가 있든 없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탐진치가 좀 있으면 무슨 문제라도 된답니까. 생물들은 그 태생부터 생존을 위해 탐진치가 따라붙게 됩니다. 수십억 년 전에 최초의 생명이 탄생할 때부터 쭉 그래왔습니다. 탐진치 자체는 자연스런 생명현상이고, 그것이 지나쳐서 사회 질서를 훼손할 때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탐진치를 적당히 제어하는 선에서 멈춰야지 그것을 뿌리째 뽑아 없앨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탐진치를 없애 마음을 비우고 깨달음에 이른다’는 등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늘날 불교의 서글픈 현실입니다.   사실 모든 것은 쓰기 나름입니다. 탐(貪)을 진리를 탐하는 데에, 진(瞋)을 진리를 모르는 無明에 대한 분노로, 치(癡)를 ‘나’ 자신의 我相을 점검하는 수단으로 각각 쓴다면 그 가치는 무궁합니다. 그리고 탐(貪)을 더 많은 세상을 담기 위한 觀으로, 진(瞋)을 대상에 더 깊이 몰입하는 공명에, 치(癡)를 我相을 줄여 화광동진(和光同塵)하는 데에 각각 쓰면 그 자체로 실존의 창조성이 몸에 물씬 배이게 됩니다. 이처럼 탐진치를 한편으로는 진리를 각성하는 동력으로 쓰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단으로 삼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왜 탐진치를 없애서 마음을 비우려고 혈안이 되는 걸까요? 마음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마음이 도대체 무엇으로 구성되고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기에 그토록 마음을 못살게 구는 걸까요?   마음을 타깃으로 놓으니 ‘부처님께 모든 것을 바치라’는 해괴한 말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신앙이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고요. 이런 병폐 때문에 세존은 無我를 기치로 꺼내 든 것입니다. 無我가 되는 순간 ‘마음’은 병립될 수 없고, 남는 것은 오로지 생각뿐입니다.   사실 수십 조 개의 단세포들이 내는 목소리가 종합된 것이 ‘생각’이고, 이런 ‘생각’이 저장된 기억 체계가 마음입니다. 그러니 마음이라고 꼭 집어 말할 바가 없고 그래서 모든 초점은 ‘생각’에 모이게 됩니다. 데카르트(Descartes)가 강조했던 ‘생각하는 존재’를 수행의 초석으로 삼게 되는 이유입니다.   결국 ‘생각’을 최고도로 완성한 것이 全知이고 그것이 깨달음이 됩니다. 그리고 ‘생각’을 완성하기 위한 동력이 탐진치이고요. 휘발유를 넣어야 자동차가 움직이듯 탐진치를 부지런히 때야 생각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 ‘생각’이 권욕과 물욕, 색욕으로만 흐르지 않고, 진리 탐구 쪽으로도 끌어와 부지런히 쓰면 되는 것이지요. 이러니 ‘번뇌즉 보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불교는 ‘마음 비우기’가 아니라 ‘생각 완성하기’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예외 없이 ‘마음 비우기’를 추구하지만 유독 불교만 ‘생각 완성’을 지향하고, 그래서 반야의 종교이고 무상정등각이 가능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마음을 비우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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