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역설] 정조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다산 정약용은 없었다?
1800년 한여름, 한 임금이 창경궁 영춘헌에서 갑자기 숨을 거둡니다. 등에 난 작은 종기 하나, 수은을 데워 쐬는 연훈방, 끝내 삼키지 못한 인삼차 한 모금. 발병 약 14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6일 뒤, 권력은 11세 어린 임금 뒤의 정순왕후에게로 통째로 옮겨갑니다. 이 한 죽음이 한 천재의 인생을 두 토막으로 갈라놓습니다. 31세에 정조의 손을 잡고 거중기로 수원화성을 들어 올리던 다산 정약용은, 이듬해 봄 셋째 형 정약종과 매형 이승훈을 같은 날 형장에서 잃고, 자신은 죄인의 옷을 입은 채 남쪽 바닷가로 떠밀려갑니다. 그 비탈의 시간이 무려 18년. 다산은 끝내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유배지 장기 바닷가에서 그는 범고래 떼가 큰 고래를 갈가리 찢는 「솔피시(海狼行)」를 남기고, 「기고금도장씨여자사」에서는 풍문을 빌려 "시상 심환지가 주범, 어의 심인이 공범"이라는 한 줄을 자기 손으로 박아 넣습니다. 2009년 공개된 297통의 정조-심환지 어찰첩이 학계의 통설을 한 번 흔든 뒤에도, 학자들은 자연사·의료사고·독살 어느 쪽도 단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강진 사의재의 4년, 다산초당의 10여 년, 18명의 제자, 그리고 그 산정에서 쏟아져 나온 500여 권. 그 가운데 일표이서 —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정조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쓰여지지 못했을 글들이 한 죽음의 뒤편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임금의 마지막 호흡이 어떻게 한 학자의 책장을 채웠는가, 그 얄궂은 역설을 따라가 봅니다. 📚 참고 사료 정약용 『여유당전서』 「솔피시(海狼行)」 정약용 『기고금도장씨여자사』 『정조실록』 정조 24년 6월 (정조 급사 전후 어의·약 처방 기록) 『순조실록』 1년 2월 18일·2월 26일 (신유박해 처분 기록) 정조-심환지 어찰첩 297통 (2009년 공개) 추안급국안 신유박해 1801 국문 기록 #정약용 #정조 #신유박해 #조선후기 #한국사 #실학 #정조독살설 #솔피시해랑행 #정조심환지어찰첩 #강진다산초당 #목민심서경세유표 #일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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