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역사 변천사 The History of Cheonggyecheon Stream #청계천 #역사 #변천사 #서울

청계천, 서울의 역사와 함께 흘러온 청계천, 그 변천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변천사를 소개하는 순서는 청계천의 옛모습, 복개와 고기도로, 다시 복원하는 과정과 현재의 모습 을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청계천은 ‘개천’이라고 불렸다. 조선왕조가 한양에 도성을 세우기 전까지 청계천은 이름도 없던 자연 그대로의 하천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의 지리적 특성상 주변의 산과 계곡에서 시작된 물줄기들은 자연스럽게 도성 한가운데로 모여 동서를 가로지르며 흘렀다. 청계천은 서울사람들의 생활공간의 일부분이었다. 아낙네들에게 유용한 빨래터였으며, 아이들에게는 개천 바닥이 말라있을 때는 공터로서, 물이 흐르고 있을 때는 물놀이 하던 곳으로 좋은 놀이터였다. 청계천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 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경 일본은 개천을 ‘맑은 계곡물’을 뜻하는 ‘청계천’이라는 이름을 붙혔다 8·15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청계천 주변에는 갈 곳 없는 피난민과 서울로 상경한 수 많은 빈민들이 모여 판자촌을 이뤘다. 해방 이후 쌓이는 토사와 쓰레기로 가득했던 청계천은 청계천을 따라 늘어선 수많은 판짓집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로 인해 빠르게 오염되어 갔다. 이처럼 청계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600년 서울의 역사, 서울사람들의 생활이 흐르는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었다. 청계천의 지천으로는 백악산 창의문에서 발원해 경복궁 서쪽을 흐르는 백운동천, 삼청동 계곡에서 발원 경복궁 동쪽으로 흐르는 삼청동천, 한양도성의 동북부를 흐르는 흥덕동천, 남산 서쪽 백범광장에서 발원하여 남대문시장으로 흐르는 창동천, 남산 기슭 남소영에 발원해 장충단을 지나는 남소문동천이 있다. 청계천은 비가 오면 자주 범람하고 서울로 유입된 인구가 많아지면서 하수와 오물로 악취를 풍기기 시작하자 그 해법으로 주변 판자촌을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개하게 된다. 복개하여 아스팔트로 메워졌고 주변에 가득했던 판잣집들은 점차 사라지고 현대식 건물들이 자리를 대신했다. 청계천 복개공사는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61년까지 4차에 걸쳐 전장 2,358.5m 구간을 완전 복개하였다. 복개공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58년부터 1978년까지 구간을 나눠서 진행되었다. 공사 당시 청계천 주변의 판잣집들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맨션이나 상점가가 건설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계천 주변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봉천동, 신림동, 상계동,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 등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청계천은 서울의 도시형태를 구성하는 중심 축이었다. 청계천을 따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생겨나고, 시전(市廛)이 형성되었다. 청계천은 북촌과 남촌을 구분하는 경계의 공간이기도 하였으며, 청계천 주변은 역관, 의관, 시전상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 즉 중촌(中村)이라고 하였다. 이후 청계로가 된 청계천에는 평화시장, 세운상가를 비롯한 큰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공구, 인쇄, 의류 등 도심 산업의 중심지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점차 교통량의 증가 등으로 고가도로의 필요성으로 청계 고가도로가 건설된다. 이로서 낙후 지역이었던 청계천이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청계고가도로(淸溪高架道路)는 남산1호터널에서 성동구 마장동을 잇는 총연장 5.8km의 고가도로다. 1969년 3월 22일 삼일로에서 용두동 구간을 먼저 개통하였으며, 1970년 8월에는 용두동 - 마장동 구간이 개통되었고, 마지막으로 삼일로 - 남산1호터널 구간이 1976년 8월 15일에 개통되면서 전 구간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청계로의 황금빛 시절도 잠시,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자 청계고가도로와 복개도로가 낙후되고 생태환경과 역사보존의 가치가 중요시되면서 청계천 복원사업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청계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그 아래에 덮여있던 청계천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당시 이명박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2년 3개월 만에 서둘러 청계로를 청계천으로 복원시켰다. 복원 전 청계천로 주변에는 1000여 명의 노점상과 6만여 개의 점포, 22만여 명의 상인들이 밀집한 대형 상권이었다. 이들은 청계천 복원 공사로 상권이 붕괴돼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교통대책을 비롯한 현실적인 상인보호 대책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일반시민, 관계전문가, 이해관계인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수립 과정에서 복원방법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한 후 추진되었다. 어렵게 청계천 복원을 결정하여, 훼손된 서울의 얼굴을 새롭게 단장하고, 인간·자연·문화가 공생하는 환경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 2003년 7월 1일 청계천 복원사업에 착수한다. 복원사업 시작 후 청계고가도로는 2003년 8월 3일에 철거가 완료되고 삼일고가도로는 2003년 10월 5일에 철거를 완료하였으며, 복개구조물은 2004년 12월까지 공정에 따라 철거하였다. 청계천 복원 구간은 중구 태평로 시작점에서 동대문을 거쳐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5.8km 구간을 3개 구간으로 나누어, 청계광장 시작지점부터 광장시장까지 2km는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였고, 광장시장에서 난계로까지 2.1km는 문화와 현대를 중심테마로 설정하였으며, 난계로에서 신답철교까지 1.7km는 자연과 미래 개념의 시간축으로 구상하였다. 총 22개의 청계천 다리(인도교 7개, 차도교 15개)는 주변 여건과 복원된 청계천에 잘 조화되도록 설치되었다. 그리고 복원의 기본 구상에 따라 시점부에서 하류구간으로 갈수록 도시적 이미지에서 점진적으로 자연성이 풍부한 하천으로 복원하였다. 게다가 하천 주변에는 9개의 수경시설과 정조반차도, 문화의 벽, 색동벽, 소망의 벽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공간을 설치하여 청계천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청계천 물길이 47년만에 다시 열렸다. 서울시는 10월1일 완공을 앞 둔 6월 1일 청계천에 물을 흘려 보내는 ‘통수시험’을 했다. 서울시의 청계천 일대 복원사업은 2003년 7월 1일 착공하여 드디어 2005년 10월 1일 완공하는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시민의 안전문제, 도심의 균형발전, 환경보호, 서울의 역사성 회복 및 문화 공간 창출 등을 위해 청계천 복원사업을 실시하였다. 청계천 복원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남겨 둔 3개의 교각과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 생활상을 체험하고 느껴볼 수 있도록 청계천박물관과 청계천 판자집을 재현해 놓았다. 청계천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화했다. 도심 속 공원인 청계천을 찾아 곳곳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서울시는 2050년까지 장기적으로 청계천을 재복원한다는 '청계천 2050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앞으로 더 나은 청계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04 Story] Demolition of the Government-General Building? No, 'Complete Dismantlement'! A Recor...
▶︎

[2004 Story] Demolition of the Government-General Building? No, 'Complete Dismantlement'! A Recor...

[서울시 기록 영상] 청계천
▶︎

[서울시 기록 영상] 청계천

Seoul, the capital in the late 1950s, had to pour all its efforts into urban reconstruction and i...
▶︎

Seoul, the capital in the late 1950s, had to pour all its efforts into urban reconstruction and i...

‘가우디 유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144년만에 솟아오른 주탑 [특톡] EP. 67
▶︎

‘가우디 유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144년만에 솟아오른 주탑 [특톡] EP. 67

청계고가도로, 근대화 상징에서 지역 명소로 [응답하라 대한뉴스]
▶︎

청계고가도로, 근대화 상징에서 지역 명소로 [응답하라 대한뉴스]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청계천 투어
▶︎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청계천 투어

[서울학개론] 청계천 물길을 따라 흐르는 서울의 역사 | 이현군 박사
▶︎

[서울학개론] 청계천 물길을 따라 흐르는 서울의 역사 | 이현군 박사

청계천 1부 "청계천을 덮어라"
▶︎

청계천 1부 "청계천을 덮어라"

Where Do the Fish in Cheonggyecheon Come From? | Kim Young-wook's Urban Exploration Team
▶︎

Where Do the Fish in Cheonggyecheon Come From? | Kim Young-wook's Urban Exploration Team

청계천 복원 사업(2003~2005)의 추억
▶︎

청계천 복원 사업(2003~2005)의 추억

한국기행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 바퀴 구경하기│서울 사람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서울 역사 기행│한국기행 특집│한국기행│#골라듄다큐
▶︎

한국기행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 바퀴 구경하기│서울 사람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서울 역사 기행│한국기행 특집│한국기행│#골라듄다큐

지도로 보는 수도권 전철(지하철) [파트1]: 1974년~2010년
▶︎

지도로 보는 수도권 전철(지하철) [파트1]: 1974년~2010년

덮었다 팠다 덮었다 팠다... 청계천, 이렇게 열악했다고?│청계천 개발의 흐름 [역사스테이 흔적]
▶︎

덮었다 팠다 덮었다 팠다... 청계천, 이렇게 열악했다고?│청계천 개발의 흐름 [역사스테이 흔적]

"이거 보려고 한국 와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감동한 한국 명소ㅣ지식인초대석 EP.14 (유홍준 교수)
▶︎

"이거 보려고 한국 와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감동한 한국 명소ㅣ지식인초대석 EP.14 (유홍준 교수)

하나뿐인 지구(Our sole earth) - 청계천, 물이 서울을 만났을 때
▶︎

하나뿐인 지구(Our sole earth) - 청계천, 물이 서울을 만났을 때

북한산 들개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존재 자체가 죄가 되어버린 새끼 강아지들의 잔혹한 운명|산에서 자라 등산객을 위협하는 북한산 들개|다큐 시선|#골라듄다큐
▶︎

북한산 들개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존재 자체가 죄가 되어버린 새끼 강아지들의 잔혹한 운명|산에서 자라 등산객을 위협하는 북한산 들개|다큐 시선|#골라듄다큐

[서울시 기록 영상] 청계천 복원 이렇게 진행됩니다.
▶︎

[서울시 기록 영상] 청계천 복원 이렇게 진행됩니다.

청계천, 창덕궁, 경회루 사업을 태종이 했다? 서울 핫플레이스를 건설한 이방원이 보인 역대급 행보 [역사 읽어드립니다] | 신병주 교수
▶︎

청계천, 창덕궁, 경회루 사업을 태종이 했다? 서울 핫플레이스를 건설한 이방원이 보인 역대급 행보 [역사 읽어드립니다] | 신병주 교수

Rare photo of life in Seoul, Korea from 1976 to 1978
▶︎

Rare photo of life in Seoul, Korea from 1976 to 1978

1945년 해방후 서울 구경(A tour of Seoul after liberation in 1945)
▶︎

1945년 해방후 서울 구경(A tour of Seoul after liberation in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