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한 가운데에 뻥 뚫려 있는 곳에 위치한 "의문의 나라", 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걸까?

#역사 #세계사 #레소토 #남아공 #역킹 여러분, 여기 지도상에 아주 기묘한 나라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남쪽으로 한참 내려가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나오는데 마치 도넛 구멍처럼 뻥 뚫려있는 곳에 작은 나라가 있습니다 국경선 전체가 남아공이라는 한 나라에 둘러쌓인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내륙국 중의 내륙국, 레소토 입니다 단순히 위치만 특이한 게 아닙니다 국토 전체가 해발 1,400M 이상이라 아프리카의 하늘 왕국이라 불리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눈물 겨운 생존 투쟁과 막장 드라마 뺨치는 정치사가 지독하게 얽혀 있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왜 남아공이라는 거대한 나라에 흡수되지 않고 남아공에게 둘러쌓여 고립된 섬처럼 살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이 작지만 매운 나라 레소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아주 깊숙하게 털어드리겠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약 200년 전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프리카 남부는 그야말로 지옥불이 펼쳐진 헬게이트 그 자체였습니다 "샤카 줄루"라는 불세출의 전쟁광이 이끄는 줄루 왕국이 주변 부족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며 영토 확장을 하고 있었거든요 주변 부족은 순식간에 불타고 사람들은 학살당하며 이 시기는 파괴와 학살의 시대, 즉 "음페카네" 시대로 불렸습니다 이 때 한 부족에서 "모슈슈 1세"라는 비범한 리더가 등장하는데 모슈슈 1세는 다른 부족들이 줄루 왕국에 대항했던 것처럼 평지에서 맞서 싸우다 전멸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해발 3,000M급의 험준한 산맥 위 천혜의 요새인 "타바 보시우"라는 산 정상에 터를 잡게 됩니다 여러분,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군이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좁은 협곡에서 싸웠던 것을 기억하시죠? 타바 보시우는 그런 협곡처럼 올라오는 길이 좁고 가팔라서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대군을 막아낼 수 있는 천연 요새였습니다 쳐들어오는 적들을 향해 산 위에서 거대한 돌멩이를 굴리고 창을 던지며 필사적으로 막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단순히 싸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폐군주였던 광해군 뺨치는 외교 전략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기를 공격하러 온 줄루 왕국에게 전쟁이 끝나면 오히려 소를 선물로 보내면서 우리는 같은 아프리카 형제니까 싸우지 말자고 달래는 기막힌 유화책을 썼다고 합니다 적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었던 거죠 하지만 이런 모슈슈 1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말을 타고 총을 든 백인 정착민 보어인들이 모슈슈 1세의 영토에 쳐들어오기 시작한겁니다 이들은 네덜란드계 후손들로 우수한 화력을 앞세워 모슈슈 1세의 비옥한 서부 평원 지대를 야금야금 뺏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모슈슈 1세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저 현대식 무기를 든 보어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 아주 대담하고 판을 크게 짜는 결단을 내립니다 당시 전 세계를 호령하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겁니다 "여왕님 차라리 우리가 당신의 먼지가 될테니" "우리를 당신의 자식으로 받아주시고 우리를 좀 보호해달라"고요 이건 굴욕적인 항복이 아니라 거대 세력인 보어인들을 막기 위해 더 큰 세력인 영국을 끌어들인 모슈슈 1세의 고도의 외교 전술이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모슈슈 1세의 부족은 영국의 보호령인 "바수톨란드"가 됩니다 덕분에 남아공의 전신인 세력들에게 완전히 먹히지 않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켜내는데 성공하게 되죠 여러분, 그런데 영국을 불러들이는 선택이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다들 직감하셨을겁니다 이 선택이 레소토가 국경이 완전히 막힌 고립된 섬이 된다는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당시엔 아무도 몰랐습니다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보어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레소토를 이용했을 뿐 레소토의 미래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66년 다른 대영 제국의 식민지들과 마찬가지로 레소토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며 자주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독립의 기쁨도 잠시 어느 나라나 그렇듯 내부적인 권력 싸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국왕이었던 모슈슈 1세의 후손 "모슈슈 2세"는 조상들이 지켜온 나라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쥐고 싶어 했고 레소토의 초대 총리였던 "레아부아 조나단"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을 상징적인 장식품으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이 갈등은 결국 1970년 총선에서 폭발했는데 선거 결과 총리였던 조나단이 패배하자 패배를 인정하기는 커녕 선거 자체를 무효화 시키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반대파들을 탄압하고 독재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 때부터 레소토는 소위 말하는 쿠테타 맛집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군부가 정권을 잡고 총칼로 위협하며 왕을 해외로 유배 보냈다가 민심이 안 좋으면 다시 불러오고 또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쫒아내는 어처구니 없는 촌극이 수십 년간 반복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웃픈 사실은 나라 규모가 워낙 작고 모든 물자를 남아공에 의존하다 보니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국경 너머 남아공 정부가 "너네 자꾸 시끄럽게 굴면 국경 폐쇄하고" "전기랑 생필품 다 끊어버린다" 이 한 마디면 총을 들고 설치던 레소토 군인들도 하루 아침에 조용해질 수 밖에 없는 나라의 운명이 자기들 손이 아니라 이웃 나라인 남아공 손에 달려 있었던 겁니다 그런 레소토는 대체 남아공을 상대로 어떻게 버텼을까요? 레소토가 가진 유일한 생존 무기는 역설적으로 물과 사람이었습니다 레소토는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고산지대라 다른 아프리카 지역과 달리 비가 많이 오고 눈이 내리는데 덕분에 수자원이 엄청나게 풍부해서 아프리카의 "워터 타워"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반면 레소토를 둘러싼 남아공의 산업 중심지인 "요하네스버그" 같은 곳들은 항상 지독한 물 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에 레소토는 거대한 토목 프로젝트를 통해 남아공에 맑은 물을 팔고 매년 막대한 로열티를 받는 일명 "하얀 석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물만 파는 게 아니라 거대한 댐을 지어 수력 발전까지 하며 레소토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긴 있지만 하얀 석유를 판 돈은 국가의 실질적인 발전이나 복지로 이어지지 않고 정치인들의 부패와 관리 소홀로 인해 대부분의 돈은 권력층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평균 해발 2,000M에 사는 평범한 국민들의 삶은 시베리아 벌판보다도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하게 됐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레소토의 땅이 좁고 척박하기 때문에 성인 남성의 절반 이상이 남아공으로 건너가 깊은 땅속 금광이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위험한 노동을 하고 그 곳에서 번 돈을 고향인 레소토에 보내고 있는 나라 전체가 남아공의 저렴한 인력 공급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치인들은 여전했습니다 오히려 권력 다툼은 더 자극적으로 흘러갔는데 2017년에는 전 세계 언론을 장식한 경악스러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수사 결과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총리의 새로운 영부인인 "메사이어 타바네"였습니다 사실 토마스 타바네는 총리 취임 이틀 전이었고 전 부인인 리포렐로 타바네와 이혼 소송 중이었는데 영부인의 지위를 전 부인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해 새로운 퍼스트레이디가 전 퍼스트레이디를 처리하려고 킬러를 고용했다는 충격적인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총리를 사이에 둔 두 여인의 치정 싸움이 국가 공권력을 동원한 암살 사건으로 번지면서 레소토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총리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 조사를 받고 전국적인 퇴진 압박을 받는 와중에도 군부를 동원해 권력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은 전세계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국민들은 굶주리고 에이즈로 죽어가는데 지도층은 영부인 자리를 놓고 총질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이후에도 레소토의 정치는 평온할 날이 없었습니다 2022년에는 기업인 출신 "샘 마테카네"가 선거에서 승리하며 변화의 바람이 부는 듯 했습니다 샘 마테카네는 레소토에서 가장 성공한 다이아몬드 재벌 중 한 명인데 정치가 하도 답답하니까 직접 나라를 경영해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하지만 그 역시 기존의 부패한 관료 조직과 남아공의 거대한 영향력 아래에서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고 레소토는 현재도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남아공에 100%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독립된 주권을 유지해야 하는 이 거대한 모순 속에 갇힌거죠 그래도 최근에는 미국이나 중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도로를 새로 깔고 대규모 의류 공장을 세우며 수출을 늘리려 노력하고는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대외 부채만 늘리는 또 다른 빚의 굴레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입니다 200년 전 조상들이 외세의 침략과 학살을 막기 위해 생사를 걸고 올라갔던 그 험준한 산맥 그 산맥은 분명 레소토 사람들을 지켜준 방패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산맥은 이제 보호막이 아니라 이들을 현대 문명과 세계 경제의 흐름으로부터 격리하는 거대한 장벽이자 감옥이 되고 있습니다 고립과 빈곤으로 물든 산 위의 왕국 레소토 레소토는 정치적 막장 드리마의 고리를 끊고 과연 산 아래로 내려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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